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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켄야의 WHITE(국내에서 '백'으로 번역/출판되어 있습니다.)를 읽다보면 '흰색' 또는 '(無)' 다양한 관점으로 사색하고 철학적이기까지한 글귀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저는 책을 개인적으로 디자인할 때 항상 고심하게 되는 '여백'을 고려하며 읽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공통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서로에게 마구 내던지지 않는다. 다른 말로,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란 얼마나 경청하는가이지,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우겨넣는게 아니다.

When people share their thoughts, they commonly listen to each other's opinions rather than throwing information at each other. In other words, successful communication depends on how well we listen, rather than how well we push our opinions on the person seated before us. 


노른자에 담겨 있는 풍부한 황금빛 노란색이나, 찻잔에 가득찬 차의 색은 거의 색이라고 없다. 되려 물질 자체 안에 내재된 속성인 식감이나 맛을 통한 깊은 단계에서 색이 지각되며,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들의 조합을 통해 색을 지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색은 시각 하나만이 아닌, 모든 감각을 통해서 이해되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적 환경의 표색계에 있어서는 인간의 모든 감각반응을 전달하지 못한다. 

Things like the rich golden yellow of the yolk from a broken egg, or the color of tea brimming in a teacup, are not merely colors; rather they are perceived at a deeper level through their texture and their taste, attributes inherent in their material nature. People perceive color through the combination of such elements. In this regard, color is not understood through our visual sense alone, but through all our senses. Insofar as color systems are based solely on the physical, visual nature of objects, they cannot convey our total response.


색은 자연 안에서 독자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색은 미세한 빛의 단계적 변화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바뀐다. 여기서 언어가 색 위에 정적인 형태를 입힌다. 

Colors do not exist separately and independently within nature; they are constantly shifting in response to subtle gradations of light.





흰색은 또한 공간과 시간의 간격이나 빈 공간, 또는 비존재나 0과 같은 추상적 컨셉 같은 시공간 이론을 내포할 수 있다.

white can also contain temporal and spatial principles like an interval of space and time and empty margin, or abstract concepts such as nonexistence and zero. 


만약 흰색이 단순히 색깔이 아니라면, 우리는 디자인이나 무언가를 표현하는 컨셉 같은 기능으로서의 흰색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If white is not simply a color, mightn’t we be able to understand it as functioning like a design or expressive concept?


흰색을 뜻하는 중국 문자 ()는 인간 해골의 형상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동물의 뼈나 해변가에 보이는 조개 껍질을 우연히 마주하게 될 때면, 우리는 저 흰색에 담겨 있는 삶의 흔적들을 보게 된다.

흰색은 삶의 주변에 존재한다. 색바랜 뼈는 우리에게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우유나 달걀의 흰색은 우리에게 삶을 이야기 한다.

the Chinese characters for white () was modeled after the shape of the human skull. The traces of life contained in the color white strikes us when we come upon animal bones in the desert, or shells along the seashore. 

White exists on the periphery of life. Bleached bones connect us to death, but the white of milk and eggs, for example, speaks to us of life.





몇몇 경우에는, 흰색이 "무(無)"를 나타낸다. 무(無)색으로서의 흰색이 비존재 상징으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無)는 "공허"나 "생기없음"을 뜻하기 보단, 앞으로 무언가가 채워질 것 같은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흰색을 적용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강력한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In some cases, white denotes “emptiness.“ White as noncolor transforms into a symbol of nonbeing. Yet emptiness doesn’t mean “nothingness“ or “energy-less“; rather, in many cases, it indicates a condition which will likely be filled with content in the future. on the basis of this assumption, the application of white is able to create a forceful energy for communication.


요컨대 창의적 마인드는 빈 그릇을 보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무언가가 끝내 채워질 것을 기다리는 과도기적 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인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창의적 관점은 무(無)에 힘을 서서히 불어넣는다.

A creative mind, in short, does not see an empty bowl as valueless, but perceives it as existing in a transitional state, waiting for the content that will eventually fill it; and this creative perspective instills power in the emptiness.


"더 큰 패턴의 부분으로 해석한다면 흰 종이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다른 말로는, 칠해지지 않은 부분을 정보가 없는 공간으로 보여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단계는 "백()"이라고 불리우는 범위 안에서 이렇게 존재한다.

“When construed as part of a larger pattern, even white paper can be satisfying.“ In other words, an unpainted space should not be seen as an information-free area; (…) An important level of communication thus exists within the dimension we call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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